따뜻한 미소 뒤 가려진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공군 생활의 고통
캔버스 앞에서 따뜻한 미소를 짓던 밥 로스, 본명은 로버트 노먼 로스였습니다. 그는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나 학업을 중단하고 아버지의 목수 일을 도우며 성장했습니다. 서툰 솜씨로 인해 사고로 왼손 검지를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18세에 공군에 입대했지만, 평발로 인해 조종사의 꿈을 접고 군 사무직으로 복무하게 됩니다. 감수성이 풍부했던 그에게 군대 생활은 억압과 통제의 연속이었고,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림을 통한 위안, 그리고 아내와의 만남과 이별
원래 플로리다 출신이었던 밥 로스는 알래스카의 아이 공군 기지로 전출되면서 그의 삶에 큰 변화를 맞이합니다. 눈 덮인 알래스카의 웅장한 풍경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는 쉬는 시간마다 아름다운 풍경을 그림으로 담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에서 미술사를 전공하던 비비안 리지를 만나 1965년 결혼하여 아들 스티브 로스를 낳습니다. 그림을 통해 서로 교감하던 부부였지만, 잦은 출장과 성격 차이로 인해 결혼 12년 만에 이혼하게 됩니다.
두 번째 아내와의 결혼, 그리고 그림에 매진하다
이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밥 로스는 공군기지 사령관의 비서였던 제인과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고 곧바로 결혼합니다. 그는 군 복무 중에도 그림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고, USO 클럽의 취미 미술 수업을 통해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며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 그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고, 틈틈이 알래스카 풍경을 그린 깡통 그림을 기념품 가게에 판매하며 짭짤한 부수입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멘토 빌 알렉산더와의 만남과 성공의 발판
하지만 밥 로스는 그림 실력 향상과 더 많은 작품 제작에 대한 갈증을 느꼈습니다. 그러던 중 TV에서 30분 안에 유화 한 작품을 완성하는 빌 알렉산더의 방송을 보고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는 빌의 온-웻 기법에 매료되어 직접 그의 수업을 찾아가 가르침을 받습니다. 독일 출신의 따뜻하고 너그러운 성격의 빌은 전쟁 포로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통해 그림 실력을 키웠고, PBS 방송을 통해 이미 유명인이었습니다. 빌의 수업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밥 로스는 군 생활을 정리하고 그림을 가르치며 살겠다는 꿈을 꾸게 됩니다. 그는 군대에서 자원봉사 미술 강사로 활동하며 실력을 쌓았고, 빌의 사업 확장을 돕는 조건으로 그의 밑에서 일할 기회를 얻습니다. 20년간의 군 생활을 뒤로하고 사회로 나온 밥 로스는 아내 제인의 지지 속에서 화가로서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합니다.
독자적인 방송 '그림의 기쁨'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다
빌의 밑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밥 로스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전직 CIA 요원이었던 왈트 코알스키 부부를 만나게 됩니다. 아내의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밥 로스의 미술 수업을 찾았던 아네 코알스키의 남편 왈트는 밥 로스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의 매니저 역할을 자처합니다. 코알스키 부부의 지원 아래 밥 로스는 빌이 진행하던 '유화의 마법' 방송을 이어받아 '그림의 기쁨(The Joy of Painting)'이라는 새로운 방송을 시작합니다. 밥 로스의 따뜻한 인상과 부드러운 목소리, 그리고 쉽고 즐겁게 그림을 그리는 그의 모습은 시청자들을 사로잡았고, 방송은 빌의 방송보다 훨씬 더 큰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사업 파트너 왈트 코알스키와의 만남과 밥 로스 주식회사 설립
방송의 인기에 힘입어 밥 로스는 미술 용품 회사 CEO 데니스의 제안을 받아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 용품을 제작하기로 결정합니다. 사업적 기회를 포착한 코알스키 부부와 밥 로스는 1985년 함께 밥 로스 주식회사를 설립합니다. 네 사람은 똑같이 25%의 지분을 나누기로 약속했지만, 회사의 핵심은 밥 로스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회사의 얼굴이자 마케팅의 전부였지만, 멘토였던 빌에게 이러한 사업 계획을 전혀 알리지 않았습니다. 방송에서 자신의 제품을 홍보하기 시작하면서 빌은 밥 로스의 배신을 깨닫고 큰 충격에 빠집니다.
성공적인 사업 확장과 방송의 인기 비결
멘토를 떠나 독자적인 사업을 시작한 밥 로스는 곧 왈트 코알스키에게 배신당하는 아픔을 겪습니다. 초기 사업은 적자를 기록했지만, 80년대 말에는 연간 34만 달러의 순수익을 올리는 성공적인 기업으로 성장합니다. 밥 로스의 미술 방송은 사업 성공의 가장 큰 동력이었습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그는 꾸준히 방송 제작에 참여했으며,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긍정적인 메시지는 시청자들에게 큰 힐링을 선사했습니다. 곱슬머리 스타일 또한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지만, 사실 그는 원래 직모였으며 방송을 위해 파마를 고수했던 것입니다. 방송 자체로는 큰 수익을 올리지 못했지만, 방송 후 밥 로스 주식회사 제품 매출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아내의 죽음과 찾아온 불행, 그리고 코알스키 부부와의 갈등 심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밥 로스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번 돈을 동물들을 돕는 데 사용하며 고향 플로리다에 동물 보호 구역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팬들과 진심으로 소통하며 따뜻한 마음을 나누었던 그에게 큰 불행이 찾아옵니다. 사랑하는 아내 제인이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아내의 죽음 이후 밥 로스 주식회사의 지분 구조에 변화가 생기면서 코알스키 부부가 회사의 과반수 지분을 확보하게 되고, 밥 로스와의 갈등이 심화됩니다. 코알스키 부부는 딸 조앤까지 회사에 합류시켜 사실상 회사를 자신들의 가족 회사로 만들어 버립니다.
암 투병 중에도 꺾이지 않았던 예술혼
오랜 흡연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던 밥 로스는 암 진단을 받게 됩니다. 병세가 악화되는 상황에서도 그는 방송 복귀를 약속하며 팬들에게 희망을 주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코알스키 부부는 밥 로스의 건강 상태를 이용하여 그에게 불리한 계약서에 서명을 강요하려 했습니다. 밥 로스가 사망한 후 그의 이름과 초상권, 작품 등에 대한 모든 권리를 회사에 영구적으로 귀속시킨다는 내용의 계약서였습니다. 밥 로스는 이에 분노하며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코알스키 부부의 배신과 법적 분쟁, 그리고 남겨진 유산
결국 밥 로스는 5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코알스키 가족은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밥 로스가 사망하자 코알스키 부부는 그의 이름과 초상권 등 퍼블리시티권을 독점하기 위해 법적 분쟁을 시작합니다. 밥 로스는 이를 예상하고 친구들에게 자신의 작품 소유권을 미리 넘겨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유언장을 변경하여 아들 스티브와 형 짐에게 자신의 초상권과 지적 재산권을 상속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밥 로스가 생전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밥 로스 주식회사의 사업을 진행했기 때문에 이미 초상권과 지적 재산권이 회사에 귀속되었다고 판단하여 그의 아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씁쓸한 결말, 그리고 세네카의 통찰
밥 로스와 코알스키 부부는 오랜 기간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좋은 관계를 유지했지만, 상황이 악화되면서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이 드러나 갈등과 배신으로 이어진 씁쓸한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로마의 사상가 세네카는 인간의 나약함과 이기심을 지적하며, 악한 행동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경고합니다. 밥 로스의 이야기는 성공과 명예 뒤에 숨겨진 인간의 어두운 욕망과 배신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사례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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