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는
법 위에 있는가
6.3 지방선거가 낱낱이 드러낸 이중 잣대 — 국민은 투표지 한 장 찢어도 구속이고, 선관위는 증거로 보전된 투표함 상자를 폐기해도 "의무 없다"고 한다.
예산은 110%로 받아놓고 인쇄는 50% — 나머지 60%는 어디 갔나
이번 사태의 출발점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선관위는 각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전체 유권자의 110% 수준으로 투표용지를 인쇄하겠다며 예산을 받아갔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비한 여분"이라는 명목이었다. 그러나 실제 중앙선관위가 각 지역에 내린 지침은 선거인 수의 50% 하한선이었다.
선관위는 지자체로부터 유권자 110% 분량 예산을 수령 → 실제 인쇄 기준은 50% → 심지어 잠실7동 제2투표소에서는 그 50% 기준조차 지키지 못한 49.3%만 준비. 110%와 49.3%의 차이. 나머지 예산의 행방은 공식 해명된 바 없다.
만약 일반 공무원이나 민간 사업자가 예산을 받은 목적과 전혀 다르게 집행하고 잔여분에 대한 설명을 하지 못한다면, 이는 명백한 예산 유용 또는 직무유기로 수사 대상이 된다. 선관위는 지금까지 이 60%의 공백에 대해 납득할 만한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국민은 투표지 찢으면 구속, 선관위는 증거 폐기해도 "의무 없다"
공직선거법은 투표지를 훼손하는 국민에게 가차 없다. 투표지를 무단으로 가져가거나 찢은 시민은 형사 처벌을 받은 전례가 있다. 그것이 옳다. 투표지는 민주주의의 물증이기 때문이다.
선관위는 "투표용지 보관상자에는 법적 보전 의무가 없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법의 정신은 글자에 있지 않다. 재판이 진행 중이고 증거보전 신청이 받아들여진 상황에서 관련 물건을 폐기하는 것은, 법적 의무 여부를 떠나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이다.
쇼핑백·지퍼백에 담아온 투표용지 — 법정 절차는 어디 갔나
공직선거법 제151조는 투표용지의 인쇄·납품·송부 과정에 정당추천위원이 입회하도록 하고, 읍·면·동 선관위가 봉함·보관하여 투표관리관에게 정식 인계하도록 규정한다. 이 조항이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다 — 투표용지가 어느 순간 어떻게 이동했는지 모든 경로를 추적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 발생 후 긴급 추가 투표용지가 지퍼백·쇼핑백에 담겨 전달됐다는 사실이 복수의 매체를 통해 확인됐다. 이 이송 과정에 정당추천위원 입회가 이루어졌는지, 봉함 절차가 지켜졌는지는 지금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시민이 편의점 봉투에 투표지를 담아 이동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즉각 현행범으로 체포됐을 것이다. 선관위 직원이 같은 행동을 하면 "긴급 대응 조치"가 된다. 이것이 이중 잣대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일련번호 없는 투표지 — 무결성의 핵심이 무너지다
사전투표용지에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바코드 형태의 일련번호가 반드시 인쇄되어야 한다. 이것은 장식이 아니다. 투표지의 정품 여부 확인, 이중투표 방지, 발급 수량과 실제 개표 수량의 대조에 없어서는 안 될 식별자다.
- ✗일련번호가 없거나 식별 불가능한 투표지가 발견된다면 → 정식 발급 투표지가 아닐 가능성
- ✗일련번호 없는 투표지가 개표에 포함된다면 → 수량 추적이 원천적으로 불가능
- ✗선관위가 "이상 없다"고 하면 → 검증할 수단이 국민에게 없다
- ✗투표용지 수량관리 장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 도태우 변호사 측의 헌법소원 제기 이유
선관위는 일련번호 관련 의혹에 대해 구체적 수치나 전수 조사 결과를 공개한 적이 없다. "이상 없다"는 말은 해명이 아니다. 국민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이 해명이다.
선관위 인근 파쇄기 — 기표지가 왜 파쇄되나
선거 직후, 선관위 주변에서 파쇄기를 통해 투표지(기표지)로 의심되는 종이들이 파쇄된 흔적이 발견됐다는 목격담과 제보가 여러 경로로 제기됐다. 공직선거법상 투표지는 개표 완료 후에도 일정 기간 봉인 보관이 원칙이다.
이 의혹이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그러나 그 "사실이 아님"을 증명할 책임은 선관위에 있다. 국민이 의혹을 가질 때 선관위가 해야 할 일은 변명이 아니라 투명한 증거 공개다.
"선거는 유효하다" — 이것은 해명이 아니라 말장난이다
사태 발생 직후 선관위는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잘못은 인정하지만, 선거는 유효하다." 이 한 문장이 모든 책임을 덮는 방어막이 됐다.
공직선거법 제222·224조에 따른 판례는 선관위의 행정 부실 자체만으로 선거를 무효로 보지 않는다. 결과에 영향을 미쳤음이 입증되어야 한다. 선관위는 이 법리를 방패로 삼아 "결과에 영향 없다"고 먼저 선언해버렸다. 투표 못 한 수백 명의 시민은 법정에서 영향을 숫자로 증명해야 한다. 선관위는 증명할 필요가 없다.
이 구조가 얼마나 부당한지 생각해보자.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소를 떠난 시민 한 명 한 명의 표가 선거 결과를 바꿨는지 수학적으로 입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선관위는 이 불가능함을 알면서 "영향 없다"고 먼저 선점한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 기관이라면 이렇게 말해야 했다. "단 한 명의 유권자도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했다면 그 선거의 정당성은 훼손된 것이며, 우리는 그 책임을 진다."
경찰을 앞세운 시민 진압 — 선관위의 폭력 외주화
공직선거법은 선관위가 경찰에 협조를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이 권한은 선거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경찰은 투표용지 부족에 분노한 시민들을 향해 투입됐다.
경찰 기동대 1천여 명이 잠실7동 제2투표소에서 팔짱 끼고 앉아 항의하는 시민들을 한 명씩 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지고, 시민들이 신체적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경찰 관계자들은 "별 문제 없다"고 했다.
경찰의 현장 대응이 적법 절차를 준수했는지, 영장 없이 신체에 물리력이 행사됐는지, 부상자가 있는지에 대한 독립적 조사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별 문제 없다"는 경찰 관계자의 자평은 수사 결과가 아니다.
선관위가 스스로 조사하는 진상위 —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기
사태 직후 선관위는 9명의 외부 인사로 구성된 '진상규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이 위원회의 설치 주체는 선관위 자신이다. 조사 범위와 방식, 결과 공개 여부를 선관위가 통제할 수 있는 구조다.
- !위원 선임 권한이 선관위에게 있어 독립성 훼손 가능성
- !예산 집행 내역, 투표용지 이동 경로 등 핵심 자료 접근권을 선관위가 통제
- !조사 결과를 공개·비공개 중 선관위가 선택 가능
- !수사권이 없어 파쇄기 사용 여부, CCTV 확인 등 강제조사 불가
민주당이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한 것은 이 때문이다. 진정한 진상 규명은 국회와 수사기관이 주도하는 독립적·강제적 조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민주주의는 선관위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이번 6.3 지방선거가 남긴 가장 위험한 유산은 투표용지 부족이 아니다. 법을 집행해야 할 기관이 법 위에 서는 구조가 이번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것이다.
국민이 투표지를 찢으면 구속이고, 선관위는 소송 중 증거를 폐기해도 "의무 없다"고 한다. 국민이 쇼핑백에 투표지를 담으면 현행범이고, 선관위 직원이 하면 "긴급 조치"가 된다. 국민이 예산을 엉뚱하게 쓰면 횡령이고, 선관위가 110% 예산으로 50%를 찍으면 "기준 변경"이라고 한다.
선관위는 헌법기관이다. 그 지위는 더 높은 책임을 위해 주어진 것이지, 책임 회피의 방패막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신뢰를 잃은 기관은 개혁 대상이다. 그 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음모론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작동이다.
국민의 의혹을 "부정선거론"으로 프레이밍하여 묵살하는 대신, 선관위가 할 일은 단 하나다 — 모든 자료를 전면 공개하고, 국민이 직접 검증하게 하는 것.